매일을 살다 보면 여지 없이 일요일의 오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숙명이자 운명이며 피할 수 없는 곤혹이자 축복이다.
홀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외로움이며, 군중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슬픔이다.
또한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또다른 반증이랄까?
낡지는 않았지만 필름 카메라 한대를 들쳐 메고 거리를 헤매인다.
담고자 하는 피사체는 무엇인지 생각을 하지 않고서도 셔터는 눌러지기도 한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함이랄까?
구상되지 않은 순간의 이끌림에 따라서...일지도 모른다.
음악이 고파서 이리저리 음반을 기웃거려 보기도 한다.
생각해 놓은 것은
Cloud Cuckoo Land 1집 이다.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얼마전부터 생각해 놓았던
Brahms Symphonie No.1 이랑
Rachmaninov Symphony No.3 랄까?
커피샵에 들어와서는 먼저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들었다.
1악장의 그 힘차면서도 절제된 내면의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듯한 느낌에 언제나가 좋은...
다시 한번 그 느낌을 되새기면서.
라흐마니노프는 있다 집에서 들어야 하면서 지금 듣고 있다는 것.
라떼는 wet 하게 마신다.
비가오는 날씨에 좀 더 젖어 보고 싶었던 것일까?
블루베리 베이글의 달콤한 향도 참 좋다.
3시 이전까지만 주는 푸딩도 오랜만에 맛을 본다니 참 좋다.
라떼에는 설탕을 넣지 않는다.
가끔은 넣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스팀 밀크의 느낌과 커피의 향을 함께 즐긴다.
맨 처럼 우유를 검지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보기도 한다.
부드러운 거품의 촉감에 손가락까지 녹아들어 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착각도...
내가 있던 자리의 전방 10시 방향에 여자 세명이 앉았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정도?
혹은 많거나 적은 정도?
가만히 보니 한명의 여자가 예전 알던 여자아이와 많이 닮았다.
꽤나 오랜 기억을 공유했으며, 꽤나 친했던, 그리고 이후로 친할 수 있었던 아이.
그냥 기억이란 그런거 같다.
혼자만이 생각하는 기억은 추억이 될 수 없다고.
함께 공유하지 않는 기억은 그저 빛바랜 의미없는 나부랭이와 다르지 않음이다.
그저 오늘 비슷한 아이를 본 것 만으로도 이렇게 기억의 한 귀퉁이를 들쳐 볼 수 있다니.
참으로 인간의 기억이란 재밌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이 피아노를 배웠고, 그 중에서 나에게 좌절감을 맛보게 해 준 아이.
나 혼자만의 감정이었겠지만,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피아노를 내 치면서도 열등감에 휩싸인채 소극적으로 쳤다고 할까?
꽤나 귀여웠고, 이뻤으며, 아무 의미 없는 만남의 연속임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대화를 들으면서의 공통점은 음악을 알며, 교회를 다닌다는 것 정도?
옅들으려 한 것은 아니고, 이어폰을 빼고서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 있었으며 들려왔다...
작년에 와인을 꽤나 마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갑자기 와인에 꽂혀 가지고선 말이다.
술이라면 죄다 좋다는 주의는 아니지만, 와인은 음미하며 즐길만한 음료이기에.
저 사진은 서면점에 막 오픈하고, Red 라는 이름으로 파티를 하고서 그 와중에?
음, 그때 참 낯이 화끈 거리는 것이 간단히 집에서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칵테일 시범 보인 것.
참, 웃겼지...하면서 생각하니 계속 웃음이 나온다.
그때 드린 사진이 저렇게 액자에 걸려 있으니 기분이 좋다고나 할까?
괜스레 또 웃어 본다.
오늘은 왠지 좀 씁쓸했다.
창 밖에는 비가 오고, 들려오는 음악에 마음은 적적하고, 혼자인 사람은 나 혼자.
그 분위기이기 보다는 나오면서 누군가와 같이 커피를 마시고 싶었기에.
그 마음을 달래지 못했기에 좀 씁쓸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아닐까 한다.
하지만 덕분에 사색에 잠기었으며, 좀 더 구체적인 삶을 구상하게 되어간다.
좀 더 홀로인게 좋으며,
좀 더 혼자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좀 더 그렇게 준비해 나가는 것이다.
올해 생각했던 것들, 미뤄뒀던 것들, 모두들, 느슨해진 필름을 팽팽히 당기고 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