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떨어지고 싶다. 취하고 싶다의 반증에 대해.

for Freedom/about Myself 2007. 10. 29. 00:29
내 몸에 피를 알콜로 바꾸고 싶다.
세맥에까지 골고루 흘러 몸 곳곳을 알콜로 물들이고 싶다.
붉은 색의 와인은 언제나 피와도 비견되어오는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그 향긋한 향미와 달콤한듯 끈적이는 붉은 빛.
높지 않지만 취하기에는 충분히 감미로운 향을 가졌다.
느낄 수 없을 듯 투명한 보드카도 괜찮을 듯 싶다.
향이 없으나 이것은 물은 아니고,
맛이 없으니 술이라 부르기도 어려웠다,
투명한 색에 속아 한없이 투명한 몸의 색으로
그리고 기울어져 가는 세상을 바라보는건 어떨까.
술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난 그 술들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내 혈액속의 피가 알콜로 바뀐다는 것은 아니다.
쉽사리 배출되어 버리고,
조금이나마 오래 간직해 버리게 되면 어딘가 고장나 버린다.
기계에 기름칠을 하는 것과도 같이 좋기도 하지만,
진득한 기름칠은 쉽사리 기계를 고장나게 해 버린다.
오늘은 깔루아 밀크에 빠져 보았다.
왠지 알콜만이 아니더라도, 커피의 향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우유의 질감에는 손을 가득이 담그고 싶다.
흘러내리는 감싸려하지만 단지 질감이 남을 뿐이다.
점심이 지나서는 오르가즘을 느꼈다.
그것은 비단 섹스에서 오는 말초적 감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일치감이 필요하겠지?
그런 의미에서는 말초적이라기 보다는 굉장히 공감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깔루아, 베일리스, 아마레또 세 종류의 리큐르가 빚어내는 신음성.
희열에찬 그리고 환희에찬 교성이라 느껴지지 않은가?
갈색의 흐르는 부드러움은 한때  느꼈던 숨결, 빛나던 머리결.
나도 그 속에 녹아든다.
나의 피는 감성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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